육아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아이와 처음 만난 날부터 조리원 생활, 신생아 황달로 병원을 오가고 집에서 첫 육아를 시작하기까지의 기록.

앞으로 육아 이야기를 쓰려면 먼저 그 시작점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매일의 육아를 기록하려면, 입원과 출산 그리고 조리원에서 있었던 일부터 한 번 꺼내놓는 게 순서일 테니까.

나는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전부 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최대한 옆에서 아내를 간호하고 육아도 함께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내 기준으로는 아직 업데이트가 더 필요할 수 있지만, 일단 열심히 레벨업 중인 신입 아빠라는 점을 감안해 주길 바란다.

입원과 처음 안아 본 날

2026년 6월 말로 수술 날짜를 잡아뒀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아빠가 될 준비가 된 걸까. 준비물은 챙길 수 있어도 마음의 준비는 어디서 주문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기가 처음 내 품에 안긴 순간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그렇다고 아기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내 옆에는 수술 후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아내가 있었다.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고 부축하고 내가 예전에 수술받았던 경험을 떠올려 펜타닐 버튼을 쓰는 타이밍 같은 자잘한 팁도 건넸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아기를 직접 돌봐야 하는 순간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첫 모자동실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조그마한 아기를 대체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몰라 두 손만 허둥댔다. 아기 피부에 보이던 점상출혈부터 퇴원할 때 들은 황달 이야기까지 신경 쓰이는 일이 여럿 있었지만, 당시에는 ‘신생아에게 흔히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즐거운, 즐겁지만 몸이 힘든(신생아 기간에는 ㅋㅋ) 날만 남았겠지.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조리원 생활, 생각보다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남편도 함께 머물 수 있는 조리원을 골랐다. 더욱이 회사까지의 거리가 훨씬 가까운 조리원을 잡아 줘서 출퇴근 시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덕분에, 나도 꽤 기쁜 마음으로 조리원에서 출퇴근했다. 아내 곁에도 있고 출근길도 짧아졌으니 제법 괜찮은 선택처럼 보였다.

구체적인 조리원 라이프는 따로 글을 써 보도록 하겠다.

아기를 처음 인계할 때 부원장님이 정말 꼼꼼하게 살펴보던 모습이 기억난다.

  • 항문 위쪽의 딤플
  • 황달
  • 약간의 기저귀 발진
  • 점상출혈

하나씩 설명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 걱정 목록도 한 줄씩 늘어났다. “이 정도는 다들 있어요”라는 말이 그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인사치레가 아니기만을 바랐다.

아기는 곧 조리원 신생아실 한 칸을 차지했고, 우리는 베베캠으로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추가 결제가 필요했는데 우리 와이프님은 아주 쿨하게 결제했다. 2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굳이 해야 하나 싶었지만 회사에서도 틈틈이 아기를 볼 수 있었으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돈값을 톡톡히 했다.

그렇게 아내의 몸조리를 돕고 베베캠을 들여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황달 수치가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매일 올라가는 황달 수치

조리원에는 아기 피부에 기기를 대서 황달 수치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경피용 측정기가 있었다. 나도 이런 기계의 이름까지 알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침마다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오늘 황달 수치는 어때요?”가 되어버리니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조리원에서 들은 수치는 14, 15, 16, 17, 18. 하루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올라갔다. 숫자는 짧았지만 그 숫자를 듣고 난 뒤의 하루는 길었다.

검색창에 ‘신생아 황달’을 입력하면 핵황달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따라 나왔다. 검색은 정보를 많이 줬지만 우리 부부의 평정심까지 챙겨주지는 않았다. 결국 다음 주 화요일로 잡혀 있던 외래 진료를 토요일로 당겼다.

첫 병원, 그리고 다시 병원

이렇게 어린 아기를 집에 가기도 전에 데리고 외출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조리원에서는 ‘도시락’이라며 분유 두 통과 따뜻한 물이 든 보온병, 여분의 기저귀를 넉넉히 챙겨줬다. 준비물만 보면 소풍 같았지만 목적지는 병원이었다.

병원에서는 아기 발바닥에서 채혈했다. 저 발바닥에서 피가 나온다고?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 아기의 우렁찬 울음 소리와 함께 피가 뽑아져 나왔다.

당시 수치는 내 기억으로 16 언저리였다. 의료진은 바로 광선치료를 시작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일단 돌아왔지만 마음까지 조리원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이번 주말만 잘 버텨보자”라는 말을 서로에게 반복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저 많이 먹이고 싸게하고 스스로 황달 수치가 내려와 주길 버티는 것 뿐이다.

점상출혈이 좋아지면서 잠깐 수치가 오르는 걸지도 모른다고 우리끼리 이유를 만들기도 했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때는 마음을 붙잡아둘 문장이 하나쯤 필요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화요일이 됐다. 조리원 경피 측정기에서는 18이 넘는 수치가 나왔다. 다시 외래를 찾았고, 이번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 광선치료를 받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솔직히 “이럴 거면 지난주에 해주시지…”라는 생각이 스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교수님이 추천한 병원에서 수속이 빠르게 진행됐고 아기의 입원 절차도 무사히 마무리됐다.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이제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광선 치료가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고생한 사람은 아내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단연 아내였다. 몸을 회복하려고 들어간 조리원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병원을 오가며 첫째날엔 아기를 입원시키고 둘째날엔 모유를 가져다줬다. 몸도 아직 회복 중인데 마음까지 쉴 틈이 없었다.

운전중에 계속 눈물을 흘렸더랬다. 무책임한 남편은 회사일로 뺄수가 없어 그 시간을 온전히 혼자만 보내게 한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중간중간 아내가 보내오는 광선치료 결과는 노란빛이 거의 핑크빛 바뀌어버린 우리 아기의 피부색이었지만 그 사진을 찍는 니큐 면회 앞에서 너무 많은 눈물을 쏟고 있을 아내가 생각이 나서 마냥 기뻐할 수 많은 없었다.

아기는 화요일에 입원해 목요일에 퇴원했다. 목요일에는 나도 회사 일정을 뺄 수 있어서 함께 갈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입원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며칠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아기를 다시 안고 병원을 나오는 순간에야 조리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기대했던 평온함을 조금 되찾는 기분이었다.

아내와 나는 계속 다짐했다. 손이 타든 어떻게 되든 이제 누구보다 많이 안아주겠다고.

집으로 돌아온 레벨 1 부모

조리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이제 정말 우리 셋뿐이었다. 집 한가운데 덩그러니 선 육아 레벨 1 부모가 할 줄 아는 건 많지 않았다.

  • 안아주기
  • 먹이기
  • 트림시키기

우리는 다음 날 오기로 한 산후도우미 선생님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다행히 장모님이 급히 와서 도와주신 덕분에 첫날의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월요일 출근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사이 아내는 산후도우미 선생님을 따라 육아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다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낮에는 육아 쇼츠와 유튜브를 틈틈이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실전에 투입됐다. 영상으로 볼 때는 모든 동작이 참 쉬워 보이는데, 현실의 아기는 재생 정지 버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온몸을 비틀고 힘을 쓰며 신생아가 이렇게 힘이 세도 돼? 라는 생각이 들때 쯤 트림을 한다거나 수유가 마무리되곤 했다.

그래도 트림만큼은 이제 내가 제법 기가 막히게 시킨다. 목욕까지 조금 익숙해지면 신생아 시기도 어떻게든 잘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중이다.

첫 만남은 어려웠지만

돌이켜보면 출산과 조리원 생활은 편안하게 쉬는 시간이라기보다, 부모가 되기 위한 첫 실전 교육에 가까웠다. 아기를 처음 안는 법부터 황달 수치를 기다리는 일, 병원에 보낼 짐을 챙기는 일, 집에서 분유를 먹이고 트림시키는 일까지 어느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첫 만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래도 하루씩 지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씩 늘었다. 아내는 회복할 틈도 없이 아기를 위해 움직였고, 나는 늦게나마 그 옆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일을 배웠다. 아직 완벽하게 준비된 부모는 아니다. 아마 ‘이제 완벽히 준비됐다’고 말할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 한 가지 더 할 줄 알게 됐다면,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과거 이야기는 여기까지 정리하고, 다음 글부터는 우리 집의 현재 육아로 넘어가보려고 한다. 레벨은 아직 낮지만 경험치는 계속 쌓이고 있다. 하지만 반전이 하나 있는데..

황달..

또 황달이다.

집에 온지 몇일만에 스멀스멀 핑크빛에서 노란빛으로 변해가는 애기 얼굴.

황달과의 지겨운 싸음도 다음 글로 또 소개 하도록 하겠다.

이 글은 우리 가족이 겪은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인 경험담이야. 신생아 황달은 피부를 통한 측정이나 혈액검사로 확인하며, 광선치료 여부는 수치 하나만이 아니라 아기의 출생 후 시간, 재태주수와 위험요인 등을 함께 고려해 의료진이 판단해. 자세한 내용은 미국소아과학회의 신생아 고빌리루빈혈증 지침NHS 신생아 황달 안내를 참고했어.